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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지명 변천사, 역사 명소, 전통음식

by quan190425 2025. 7. 12.

통영 동피랑 마을 벽화 사진

통영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문서에만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그 뿌리에는 오래전부터 이어진 주민들의 구전과 다양한 생활 풍습이 녹아 있습니다. 공문서, 지방 기록, 구전 설화가 서로 얽히며 하나의 지명이 만들어진 과정은 그 자체로 통영이 가진 문화적 독창성을 보여 줍니다. 이번 글에서는 통영 지명 변천사와 통영을 처음 찾는 분들도 알차게 즐길 수 있도록 꼭 방문해야 할 대표 역사 명소, 전통음식의 역사와 특징을  더 풍부하게 살펴보겠습니다.

통영 지명 변천사, 문서와 구전의 조합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남해안 방어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 결과 1604년, 이순신 장군의 업적과 해전의 중요성을 기리며 경상우수영과 별도로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했습니다. ‘통제영(統制營)’은 모든 수군을 통합 지휘하는 본부로서 전략적 중심지였고, 이곳에 군사와 상업, 행정의 기능이 집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삼도수군통제영’이라는 긴 이름이 쓰였으나, 일상에서 사람들은 단순히 ‘통제영’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조선 후기부터 여러 관청 문서에 통제영이라는 명칭이 점차 자주 등장했고,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에 수차례 언급되면서 공식성을 띠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 지도 제작과 읍지에도 ‘통제영’ 표기가 병행되며 행정구역으로서 위상을 굳혔습니다. 이런 문헌 자료가 통영 이름의 기초를 보여주지만, 실제 일상에서는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통영’이라 줄여 부르며 더 간결하고 편리한 호칭을 만들었습니다. 초기 기록과 구전이 공존하면서 이름이 변화해 간 과정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공식 기록과 달리 구전으로 내려온 이야기들은 통영 이름에 생생한 온기를 더해 주었습니다. 예부터 남해안 주민들은 이곳을 ‘수군의 본영’ 또는 ‘영지’라고도 불렀습니다. 항구와 진영이 함께 어우러져 ‘통영’이라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정착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통영 지역 상인과 어민들 사이에서 통영이 ‘통행의 영지’로 불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곳은 무역과 교역이 활발했기 때문에 바닷길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기능이 강했습니다. 구전에는 “통하는 영, 통행의 영지”라는 표현이 남아 있었고, 이것이 오늘날 통영의 이름을 형성하는 하나의 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구전과 풍습은 문헌에 공식적으로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지역 주민들이 수백 년에 걸쳐 구체적으로 사용해 온 명칭입니다. 결국 통제영이라는 문헌적 기원과 주민들 사이의 자연스러운 언어습관이 결합해 ‘통영’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에 들어 조선 사회가 점차 안정되고 지방 행정체계가 정비되면서, 통영이라는 이름은 더 자주 문헌에 나타납니다. 『통제영지』, 『경상도읍지』 같은 지방 문헌에 통영의 이름이 관청 보고서 형태로 등장했고, 이를 통해 점차 전국적인 지명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제작된 고지도에는 ‘통제영’과 ‘통영’이 나란히 표기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는 행정상의 명칭과 일상에서 부르는 이름이 한동안 혼재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1895년 갑오개혁 이후 관제 개편이 이뤄지면서 ‘통영군’이라는 명칭이 공식화되었고, 드디어 현재까지 이어져 온 ‘통영’이 확립됩니다. 이 시기의 문헌들은 단순한 행정 기록을 넘어, 지역민의 삶과 문화가 어떻게 하나의 이름으로 귀결되었는지를 생생히 전해 줍니다. 구전이 남긴 자취와 문헌의 객관적 기록이 서로 보완하며 통영이라는 지명을 완성한 셈입니다. 통영의 이름은 ‘통제영’이라는 군사적 기원과 오랜 구전, 풍습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진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공식 문헌과 주민들의 이야기, 다양한 문서 기록이 얽힌 이 지명은 단순한 행정 구역을 넘어, 통영의 문화와 자부심을 상징합니다. 앞으로 통영을 여행하거나 공부하실 때, 이름에 담긴 의미를 떠올리며 그 시간을 음미해 보시길 권합니다.

역사 명소 

통영의 역사는 ‘삼도수군통제영’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임진왜란 직후 수군 재건을 위해 설치된 통제영은 남해안을 방어하는 핵심 사령부였고, 이후 300여 년 동안 조선 수군의 본부 역할을 했습니다. 현재 통제영지에는 객사, 중앙군영, 수군사령부 건물이 복원되어 있으며, 당시의 통제영 터와 방어진지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특히 세병관은 통제영의 상징과 같은 건물입니다. 통제사가 공식 행사와 집무를 보던 이곳은 웅장한 목조건물로, 통영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건물에 들어서면 높은 기둥과 겹처마의 아름다움에 압도당하게 되며, 내부 전시물을 통해 통제영의 체계와 수군의 조직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통제영 일대는 야경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합니다. 조선 수군의 위엄이 담긴 공간을 낮에는 탐방하고, 밤에는 조명이 비추는 고즈넉한 풍경을 즐기면 역사적 감동이 한층 깊어집니다. 통영 역사 여행의 또 다른 핵심은 충렬사입니다. 충렬사는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으로, 수백 년 동안 지역민들의 정신적 기둥이 되어 왔습니다. 사당 경내에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본전과 함께 기념비, 여러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충렬사를 방문하면 이순신 장군의 삶과 해전을 기리는 다양한 전시물을 볼 수 있고, 그 시대의 조선 수군이 어떻게 싸웠는지를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매년 봄과 가을에는 제향 행사가 열려 장군의 위업을 기리는 의식이 진행되는데, 이 시기에 맞춰 방문하면 더욱 뜻깊은 체험이 가능합니다. 충렬사는 단순한 역사 유적을 넘어서 지역민들의 마음속 신앙과도 같은 장소입니다. 이곳을 찾으면 임진왜란의 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바다를 지켜낸 용기와 희생을 느낄 수 있습니다. 통영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해 꼭 들러야 할 곳입니다. 동피랑 벽화마을은 최근 통영의 대표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이곳에도 중요한 근대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동피랑은 본래 통제영을 지키던 동포루(동벽루)가 있던 언덕이었고, 일제강점기 이후 가난한 어민들이 모여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지금은 화려한 벽화가 가득하지만, 골목 곳곳에 당시의 흔적과 건물들이 남아 있어 근대사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옛 방공호, 일제시대 건물 터 등이 마을에 산재해 있고, 골목길을 따라 걸으면 통영의 지난 백 년을 되짚는 느낌이 듭니다. 또한 동피랑 언덕에 오르면 통영항과 통제영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이 풍경은 과거 수군이 바다를 감시하던 시절부터 이어져 온 ‘바다의 도시’ 통영의 진면목을 보여 줍니다. 단순히 사진 명소로만 보지 않고, 이곳의 역사적 맥락을 알고 걸으면 전혀 다른 감동이 스며듭니다. 통영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조선과 근대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품은 살아 있는 역사 공간입니다. 통제영, 충렬사, 동피랑 마을을 천천히 둘러보면, 이 도시의 정체성과 수백 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다가옵니다. 다음 여행에서는 통영의 이름뿐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역사를 함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전통음식의 역사와 특징 

통영 전통음식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단연 충무김밥입니다. 충무김밥은 통영의 옛 이름인 충무(忠武)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항구에서 일하던 어부들이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했다고 전해집니다. 일반 김밥과 달리 밥과 반찬을 따로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며, 김에 밥만 돌돌 말아 소박하게 담고, 곁들임으로 매콤하게 무친 오징어무침과 무김치를 함께 냅니다. 과거 바다에서 금세 상하기 쉬운 재료 대신, 소금과 고추장으로 간을 센 반찬을 곁들여 안전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한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날 충무김밥은 통영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유명해졌으며, 단순한 음식이 아닌 어부들의 삶과 해양문화가 결합된 전통음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통영 시내에는 수십 년째 같은 방식으로 김밥을 내는 노포들이 있어, 고유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통영의 전통음식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다찌 문화입니다. 다찌는 술집 형태의 선술집으로, 제철 해산물을 다양하게 차려내는 방식이 특징입니다. ‘다찌’라는 말은 일본어에서 유래했지만, 통영에서는 지역색이 강한 음식 문화로 독자적으로 발전했습니다. 다찌 상에는 멍게, 해삼, 전복, 생선회, 조개찜 등 싱싱한 바다 음식이 한 번에 수십 가지 오르는데, 계절과 날씨에 따라 메뉴가 달라집니다. 손님이 술을 주문하면 그날 손질한 해산물을 무제한에 가깝게 내어 주는 곳도 많아, 통영 사람들의 푸근한 인심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이 문화는 과거 어민과 상인들이 새벽에 작업을 마치고 함께 모여 술잔을 기울이던 풍습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단순한 주점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대와 정보 교류의 장이 되었고, 통영의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합니다. 통영 사람들에게 우짜는 특별한 추억이 담긴 음식입니다. ‘우짜’는 이름부터 독특한데, ‘우동+짜장’을 합친 말로, 실제로 두 가지 면을 한 그릇에 담아 내는 음식입니다. 1970년대 통영 항구 주변 중국집에서 생겨난 메뉴로, 돈이 넉넉지 않은 어민과 노동자들이 한 그릇으로 두 가지 맛을 즐기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뜨끈한 우동 국물과 달큰한 짜장 양념이 묘하게 어울려, 통영을 방문한 많은 이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합니다. 이 음식은 값싸고 푸짐하며,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통영 사람들의 소박한 생활문화를 잘 보여줍니다. 현재도 통영 구도심에는 오래된 중화요릿집이 남아 있으며, 그곳에서 우짜를 맛보면 이 도시가 걸어온 시간과 주민들의 삶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습니다. 통영은 이름부터가 복합적이며, 문서적 권위와 구전 설화가 겹겹이 스며 있는 도시입니다. 임진왜란의 교훈과 조선 수군의 자부심, 그리고 지역민의 구전이 오늘날 통영이라는 지명을 만들었습니다. 이 독창적인 이름의 역사는 통영의 문화적 가치를 증명하며, 여행자와 연구자 모두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다음에 통영을 찾으신다면 바다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 음식을 꼭 맛보며 그 이야기를 함께 느껴보시길 권합니다.